이른 아침 일산을 지나면서 파주 CC 방향의 도로에는 차량들이 간간히 지나고, 비를 뿌리는 아침 안개가 짙게 밀려왔다. 자동차 앞 유리를 부지런히 오가는 와이퍼를 보고 있자니 비가 더 내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후배를 만나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가다보니 한두 번 외곽순환도로를 빠져나가지 못하는 실수가 있었고, 이로인해 도착 예정 시간은 약속했던 식사 시간을 줄여가고 있었다.
라운드를 시작하기 직전에 비가 그쳤다. 오랜만에 한국에서 하는 라운드를 비 때문에 망치지는 않을까 가슴이 조마조마 했었는데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날씨 요정인가?
골프를 치는 날에만 '내 마음대로 날씨'가 가능해지는 듯... 바람대로 날씨 때문에 라운드를 하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늘 운이 좋다는 생각을 한다.
골프장의 소나무 조경이 골프장 주인의 취향을 말해주는 듯하다. 골프장은 문을 연지 약 10년 정도 되었다고 하는데, 공사 기간을 포함한다면 훨씬 더 전부터 이 소나무는 이리로 오기로 예정되어 있었을 것 같다.
한국에 도착하기 전에 라운드 일정은 미리 잡혔고 소나무들처럼 이곳으로 왔다.
완연한 봄기운이 느껴지는 파주 CC는 산속에 아늑하게 자리를 잡은 골프장이다. 다소 좁고 언듈레이션이 있는 페어웨이와 오르막 내리막 경사가 티샷을 할 때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한다. 내리막 파 5 홀은 투 온도 노려볼 만하다.
자카르타 골프장에 비하면 턱없이 느린 그린 스피드가 오랜만에 한국에서의 라운드를 다소 실망스럽게 했다. 골프 실력은 긴장감이 감도는 퍼팅에서 판가름이 난다. 그리고 적당히 빠른 그린 스피드가 골프의 즐거움과 묘미를 더해준다.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날씨는 더 따뜻해졌다. 겨드랑이에서부터 조금씩 땀이 나기 시작했다. 반팔 차림으로도 전혀 춥지 않았다. 조금씩 스윙도 안정감을 찾기 시작했다.
전반 홀에서는 샷이 들쭉날쭉했다. 자카르타보다 낮은 기온, 날씨 영향도 있었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시간에 쫓기는 플레이가 마음을 급하게 만들었다. 예전에는 그런 플레이 흐름에 적응이 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자카르타의 플레이 흐름에 익숙해진 탓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자카르타 시각으로 새벽 2시경에 일어나서 골프장으로 왔기 때문에 평상시 컨디션을 유지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했다. 몸이 무거웠고, 지대가 높아서 그런지 멍~한 기분이 들었다. 아침 골프 그린피가 싸다고는 하지만 자카르타의 오후 타임에 비할바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기온이 높아 덥기는 하지만 골프장에 도착하자마자 스윙을 해도 평상시 컨디션이 유지되는 자카르타의 골프 환경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가운 사람들과 오랜만에 만나 웃고 떠들다 보니 18홀이 금방 지났다. 그리고 뜨끈뜨끈한 온탕에서 피로도 풀었다. 갈증이 났다. 그린 스피드에 대한 생각도 잊히고 마주 앉아 시원한 맥주 한 잔을 할 생각에 길을 재촉한다.
이른 아침 봄비에 촉촉이 젖어있는 골프장의 서정적 풍경에 메마른 마음이 말을 건넨다.
"봄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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