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침 풍경

Mt. Salak(구눙살락)의 아침

by _ Lucas 2022. 6. 6.
728x90
반응형

 

 

 

오랜만에 구눙 살락(Gunung Salak_Mt. Salak)이 이른 아침부터 장엄한 자태를 드러냅니다. 이렇게 산 전체가 완전하게 드러나는 일은 이곳에서 흔치 않은 일이라서 아침 해가 뜰 때까지 발코니에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DSLR 카메라를 들고 나오려다 휴대폰 카메라만으로도 충분하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카메라는 왜 샀는지...ㅎ

날씨가 맑은 날에는 자카르타 어디에서나 살락산을 볼 수 있습니다. 자카르타 남쪽에 떡허니 버티고 있는 살락산은 높이와 웅장함이 다른 산들과는 달라서 보기만 해도 좋은 기운을 느낍니다. 더구나 자카르타 시민들에게는 방향을 알려주는 하나의 이정표이기도 합니다. 주로 날씨가 흐려 그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날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 도심 주요 건물들이나 골프장 클럽하우스, 1번 홀 티잉 그라운드는 살락산을 마주 볼 수 있게 설계된 곳이 많습니다.

이정표는 여러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정표(里程標, Milestone)

-도로에서 각 방향이 어느 쪽을 가리키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표지

-어떤 일이나 목적의 기준

 

이ː정-표(里程表)

-육로(陸路)의 이정을 기록한 일람표

 

개인적으로 이정표라고 하면 떠오르는 한시(漢詩)와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서산대사가 지었다는 '답설(踏雪)'인데요. 최근 학계에서는 율곡 이이의 학문을 사모했던 조선 후기 문인 이양연(李亮淵, 1771(영조 47)~1853(철종 4)이 지은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1948년 38선을 넘으며 한반도의 분단 현실을 걱정하며 위의 시를 읊었다는 말도 전해집니다. 그리고 무슨 일을 결행할 때마다 이 시구를 되뇌일 정도로 백범 선생님이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제가 존경했던 대표이사님 한 분은 회사에서 컨벤션 행사를 하는 자리에서 '답설(踏雪)'을 파워포인트로 연단에 있는 대형 화면에 띄우게 하시고, 당구 큐대로 '답설(踏雪)'을 한자한자 짚어가며 그 의미를 파트너 분들에게 전달하고자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먼저 회사의 보다 큰 성장에 대한 욕심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사리사욕에 눈이 먼 본사 임원들과 파트너들과의 관계를 엄중한 꾸짖는 가르침이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들판의 눈_野雪


穿雪野中去 눈 밟고 들 가운데 걸어갈 적엔
不須胡亂行 모름지기 어지러이 걷지 말아라.
今朝我行跡 오늘 아침 내가 간 발자국들이
遂爲後人程 마침내 뒷사람의 길이 되리니.

雪朝野中行 눈 온 아침 들 가운데 걸어가노니
開路自我始 나로부터 길을 엶이 시작 되누나.
不敢少逶迤 잠시도 구불구불 걷지 않음은
恐誤後來子 뒷사람이 헛갈릴까 염려해서네.

몇 날 며칠을 준비했던 모든 자료를 뒤집어엎으시고, '답설(踏雪)'로 발표가 마무리된 그 행사 이후로 회사는 승승장구했습니다. 운이 좋은 것인지, 그 교육의 효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대표이사님의 일장 훈시는 세간에 오르내리는 감동적인 에피소드로 남았고, 우리 직원들은 회사의 의식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진 것처럼 으쓱해지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직위를 가진 사람이, 지역에서 지역의 오피니언 리더가 각자 가야 할 길을 알고 정의를 실천해 간다면 그다음 사람들도 그들의 노력과 업적을 이정표 삼아 바르고 정의롭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셨던 것 같습니다. 회사의 규정을 위반해서 사리사욕을 취했던 사람들은 잠시 주춤하기도 했었지만 회사가 크게 성장하면서 다시 고개를 들었고,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가르침을 이정표 삼아 그렇게 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회사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본주의화가 깊어질수록 그때 그분의 가르침에도 부침이 없지 않습니다. 시대적 상황의 변화 때문이겠지만 자본주의에 매몰된 자화상이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분을 발라서 홍조를 지워도 되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온전하게 그렇게 살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내 삶의 이정표로 남아있었던 그 가르침을 내팽개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발코니에 나가면 사진에서처럼 아슬아슬하게 살락산이 거의 다 보입니다. 더 이상 왼쪽으로는 볼 수 없어서 조금은 아쉽기도 합니다만 사진으로 보면 충분히 다 보이는 듯합니다. 덜 보이고, 다 보이고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만 어린아이들의 세계에서 아파트와 차의 크기로 계급이 나눈다고 하니 그것이 그들 인생의 이정표로 굳어질까 걱정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아침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7월, 자카르타의 날씨  (0) 2022.07.15
자카르타(Jakarta)의 아침  (0) 2022.06.10
아침 풍경_1~3 Jan.  (2) 2022.01.03
Jakarta Sunrise _ 1 Jan. 2022  (0) 2022.01.03
아침 산책_9 Oct.  (0) 2021.10.09

댓글